업종과 분위기를 먼저 정하면 메뉴판 폰트 선택이 반으로 줄어든다

폰트를 고르려고 검색창에 "메뉴판 무료 폰트 추천"을 치면 죄다 비슷한 글들이 나옵니다. 폰트 이름 열댓 개 늘어놓고 끝. 어떤 걸 내 가게에 써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알려줘요.
막막한 건 당연한데, 폰트보다 앞서 정해야 할 게 있거든요. 업종하고 분위기, 이 두 가지가 먼저입니다. 이 두 질문에만 답하면 폰트 계열이 거의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폰트마다 성격이 있다
명조는 격식 있고 정갈한 인상, 고딕은 깔끔하고 읽기 편한 느낌, 손글씨는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 디스플레이(장식체)는 개성 있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손님이 메뉴판을 집어 들 때, 글자를 읽기 전에 이 성격을 먼저 받아들입니다. 같은 "곰탕 10,000원"이라도 정갈한 명조로 찍힌 것과 손글씨 폰트로 쓰인 건 첫인상이 다릅니다. 전자는 "제대로 된 집", 후자는 "정겹고 편한 집"이라는 신호를 폰트가 먼저 보내는 거죠.
그러니 "예쁜 폰트"를 찾기 전에 내 가게가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업종과 분위기로 폰트 계열을 정하는 흐름
두 가지 질문에 순서대로 답해보세요. 이 흐름이 폰트 계열을 좁혀줍니다.
먼저 업종을 확인합니다.
→ 메뉴 수가 많거나, 손님이 빠르게 훑어야 하는 업종인가?
예: 이자카야, 포장마차, 분식점, 메뉴가 30개 이상인 한식당
이 경우엔 고딕 계열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나눔고딕, 한림고딕체처럼 산세리프 계열은 가독성이 뛰어나고 어떤 업종에도 무난합니다. 손글씨나 장식체는 메뉴 수가 많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 고딕 계열 확정. 아래 분기로 내려갈 필요 없음.
아니라면(메뉴가 많지 않거나 분위기 연출이 중요한 업종),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 손님에게 주고 싶은 인상은?
① 고급스럽고 격식 있는 느낌 (한식당·정찬·프리미엄 식당)
→ 명조 계열. 제주명조, 나눔명조처럼 획에 세리프가 붙은 글자는 단정하고 무게감 있는 인상을 줍니다. 한정식집이나 프리미엄 한식당이 이 계열을 쓰면 메뉴판이 가게의 격을 자연스럽게 받쳐줍니다.
② 편하고 캐주얼한 분위기 (카페·브런치·경양식)
→ 손글씨 계열. 한나체Pro나 속초바다 손글씨체처럼 불규칙한 획이 살아있는 폰트는 따뜻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잘 만들어 줍니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주의가 있습니다. 손글씨 폰트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메뉴명 제목에만 쓰고, 가격이나 설명 텍스트는 고딕으로 받치는 게 좋습니다. "손글씨 폰트가 예쁘니까 메뉴 전체에" 쓰면 오히려 읽히지 않습니다.
③ 레트로·빈티지 감성 (베이커리·빈티지 카페·복고풍 식당)
→ 디스플레이(장식체) 계열. 굵고 개성 있는 획. 어그로체는 레트로 포스터 느낌이 바로 납니다.
장식체는 크게 써야 성격이 드러납니다. 제목 크기로 크게 써야 분위기가 살고, 작게 쓰면 그냥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가 될 뿐입니다. 이것도 흔히 놓치는 지점이에요.
이 두 질문에 답했으면 폰트 계열이 결정됩니다. 남은 건 그 계열 안에서 구체적인 폰트를 골라 라이선스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폰트를 쓰기 전에 인쇄 허용 여부를 따진다
폰트 계열을 정했으면, 구체적인 폰트를 고르기 전에 상업용 인쇄가 허용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무료 폰트라고 해서 모든 용도가 허락된 건 아닙니다.
폰트비(fontbee.waffle-gl.org)에서는 각 폰트 상세 페이지의 사용 범위 탭에서 이걸 아이콘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뉴판을 만들 때는 세 가지를 보면 됩니다.
인쇄 가능 여부 — 메뉴판 자체가 인쇄물이니 당연히 확인해야 합니다. 포장지 가능 여부 — 음식 포장 용기나 종이봉투에도 같은 폰트를 쓸 계획이라면 이것도 봐야 하고요. BI/CI 가능 여부 — 가게 로고나 간판에도 같은 폰트를 쓰고 싶다면 이 항목이 허용인지 확인합니다.
OFL(오픈 폰트 라이선스) 폰트는 폰트 파일 자체를 파는 것만 금지하고, 상업 인쇄 사용은 기본으로 허용합니다. 폰트비 상세 페이지에 OFL 표시가 있는 폰트라면 별도 허가 없이 메뉴판 인쇄에 써도 됩니다.
어그로체처럼 OFL이 아닌 폰트는 폰트비 사용 범위 탭에서 인쇄·포장지·BI/CI 허용 여부를 개별로 봐야 합니다. 이 확인 없이 인쇄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가 있으니, 번거롭더라도 이 단계는 빠뜨리지 마세요.
판형별로 폰트 크기를 맞춘다
A3 벽걸이 메뉴판 만들 때 글자 크기가 막힌다면, 아래 기준을 그대로 쓰면 됩니다.
A3 벽걸이 메뉴판은 손님과 거리가 있어 제목(메뉴명)을 28~36pt 정도로 크게 잡아야 합니다. 설명 텍스트는 12~14pt, 가격은 14~16pt가 기준입니다.
A4 테이블 메뉴판은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제목 18~24pt, 설명 10~11pt, 가격 12pt 정도면 됩니다.
A5 소형이나 테이블카드는 제목 14~18pt, 설명 9~10pt입니다. 작은 판형에 메뉴를 빽빽하게 채우면 오히려 읽기 싫어집니다. 메뉴 수를 줄이거나 QR 코드 메뉴판과 병행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행간은 글자 크기의 1.2~1.5배. 이게 생각보다 자주 놓치는 부분인데,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본값 그대로 두면 대부분 이 범위 안에 들어오니 크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폰트 조합은 두 가지로 제한한다
메뉴판에 폰트를 세 가지 이상 쓰면 산만해집니다. 제목용 하나, 본문·가격용 하나. 이 두 가지 조합이 가장 안정적이고 깔끔합니다.
손글씨나 디스플레이 폰트를 제목에 썼다면, 본문은 고딕이나 명조처럼 가독성이 뚜렷한 폰트로 받쳐줘야 합니다. 개성 있는 폰트끼리 충돌시키면 어느 쪽도 살지 못합니다.
빈티지 베이커리라면 제목은 어그로체 Bold, 본문·가격은 나눔고딕 Regular 조합이 잘 작동합니다. 고급 한식당이라면 제목과 본문 모두 명조 계열로 통일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제주명조 제목에 나눔명조 Regular 본문, 이런 식으로요.
폰트비에서 마음에 드는 폰트를 찾았다면, 같은 제작사 폰트끼리 제목·본문 짝을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같은 제작사가 만든 폰트는 디자인 언어가 일치해서 따로 배워야 할 조합 감각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폰트비 검색에서 제작사 이름으로 필터하면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메뉴판은 손님이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인쇄물입니다. 폰트 하나에 시간 좀 쓰는 게 아깝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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